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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드는 생각 축적방

고승전-석도안(釋道安)

석도안(釋道安)'마하발라야바라밀경초서(摩訶鉢羅若波羅密經抄序)'라는 글에서 오실본(五失本), 5가지 어긋나는

점을 들어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첫째, 범어(梵語)와 한어(漢語)의 어순(語順)이 전혀 다르다.

 

둘째, 범어는 직설적이며 소박한데 반해 한어는 문식()전아(典雅) 함을 좋아한다.

 

셋째, 범어는 반복하여 되풀이하는 것이 많은데 대하여 한어는 간결하고 유창한 것을 좋아한다.

 

넷째, 범어로는 본문의 해석이 섞이는데 한어에서는 그것을 생략한다.

 

다섯째, 한 가지를 설하고 나서 다시 그 뜻을 설하고야 세목()으로 들어가는 범어의 형식을 한어에서는 즉각 세목으로 들어가 다시 설하지 않는다는 것 등이다.

 

그는 또 삼불이(三不易), 곧 세 가지 어려운 점을 들었다.

 

첫째로 시속(時俗)에 따른 것이 성인이 이룬 언어의 본령()이건만, 이것을 모두 현대어로 바꾸어야 하는 일.

 

둘째로 옛날 상지(上智)의 미어(微語)를 말대 속세(末代俗)의 하우(下愚)에게도 알도록 말을 바꾸는 일.

 

셋째로 부처님 가신 지 천년이 지난 말대(末代)의 마음으로 부처의 뜻을 헤아리는 일 등이다.

 

아무튼 경((() 삼장(三藏)을 범어에서 한어로 번역하여 소개하는 일 없이는 중국에 불교가 있을 수 없었고,

번역 사업에 종사한 수많은 승려 없이는 단 한 부의 경전도 중국사람들의 것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래 여섯 고승의 행적을 더듬어 보겠다.

불가사의한 역경성승(譯經聖僧)의 숙명

 

고승전 - 석도안

 

- 안청전(安淸傳)

안청(安淸)은 자()를 세고(世高)라 하며 안식국(安息國왕비가 낳은 태자(太子)였다. 어려서부터 효행이 지극하고 학업

에 뛰어났으며 배우려는 욕망이 대단히 왕성하였다외국 서적들과 칠요(七曜: ··· ,··토의 학문)

오행(五行)의 학문, 의술(醫術), 그 밖의 진기한 술법(術法)은 물론이고, 나아가 새나 짐승의 울음소리에 이르기까지 연구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어느날 길을 걷다가 제비들이 떼지어 앉아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동행하던 사람에게 말했다.

"조금 있으면 먹을 것을 가져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때문에 제비들이 저렇게 지저귀고 있는 것이다.&

과연 얼마 안 되어 먹을 것을 가져다 주는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에게는 그런 안청이 신기하게 보였다. 그러므로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소문은 일찍이 서역(西域) 전 지역의 여러나라에 퍼져 있었다.

세고(世高:安淸)는 집에 있을 때에도 극히 엄격하게 계율()을 지켰다.

부왕(父王)이 세상을 떠나자 왕위를 계승하였다. 그러나 인생이란 괴롭고 공()하다는 진리를 깨닫고 자신의 육체를 혐오()하게 되었다.

부왕의 상()을 마친 후에 숙부(叔父)에게 왕위를 선양(禪讓)하고 출가(出家)하여, 불도(佛道)를 닦음과 동시에 많은 경

(經典)도 두루 통달하였다.

특히 아비담(阿毘畵)에 정통하였으며 선관(禪觀)을 설()는 경전을 완전히 외워 그 경전의 진수(眞髓)를 속속들이 깊이

연구하였다.

그는 각 지방을 돌면서 부처의 가르침을 널리 펴고, 또 여러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많은 공부를 하였다.

()나라 환제(桓帝:後漢 147~167) 초기에 마침내 중국에 이르렀다.

그는 재주와 깨달음이 남달리 기민(機敏) 해서 한번 들으면 그내용을 완전히 이해하였다. 그래서 중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중국말을 유창하게 구사하고 완전히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경전을 중국어로 번역하였는데, 범어(梵語)를 한문으로 옮긴 것이 '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 &음지입경(持大經)', 대소(大小) 이종(二種)'십이문론(十二門論)' '백육십품(百六十品)' 등이다.

처음에 외국의 삼장법사(三藏法師) 중호(衆護)가 여러 경전의 긴요한 뜻을 모두어 만든 27() 중에서 7장을 뽑아 한문으로 역출(譯出)하였는데 그것이 '도지경(道地經)'이다.

안청이 전후하여 역출한 경전이나 논서(論書)는 모두 39()인데, 그 논리가 정연하고 표현이 빈틈없으며, 유창하면서도 화려한 데로 흐르지 않고 질박(質朴)하면서도 조잡하지 않아, 는 사람들로 하여금 싫증을 느끼지 않게 하였다.

세고는 삼라만상(森羅萬象)을 꿰뚫는 도리(道理)를 깊이 연구하고 '' 라는 존재가 지금 여기까지 이르게 된 인연과 마침내돌아가야 할 곳을 알았다.

그의 행동거지에는 사람의 지혜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아서 그가 어느 정도의 인물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어느 때인가 그는 스스로에 대해 말했다.

전세(前世)에 출가해서 함께 공부하던 벗 가운데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걸식(女食)하러 다니면서, 베푸는 자가 자신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언제나 원한을 품었다. 내가 몇 번이나 타일렀지만 그는 기어이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하였다.

 20여 년이 흐른 뒤에 나는 그에게 이별을 고하며 말하기를 '는 광주(廣州)로 가서 전세에서 이어진 인연에 종말을 지어야 한. 자네는 경전 연구에 있어서는 온 정성을 기울였기 때문에 나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다만 성품이 격하여 화를 잘 내는 것이 흠이라서, 이제 살아 생전의 생명을 다한 뒤에는 반드시 축생(畜生)의 몸을 받아 태어날 것이다. 만약 내가 도()를 얻게 된다면 반드시 자네를 구원해 주겠노라.' 라고 했다. 그런 뒤 내가 광주에 이르렀을 때 마침 도둑떼가 크게 일어나 휩쓸고 있었다. 나는 도중에서 한 젊은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나를 만나자 손바닥에 침을 뱉고는 다짜고짜 칼을 뽑아들고 말하기를 드디어 너를 만났구나.' 라고 했다. 나는 웃으며 '나의 숙명은 그대 손에 달려 있다. 그래서 먼 길을 와 그 갚음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그대의 분노는 이미 전세에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고 하고는 목을 길게 늘여 칼날을 받으려 하였다. 그 때 두려워하는 기색을 조금도 얼굴에 나타내지 않았는데, 드디어 도둑은 나를 죽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