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회는 오(吳)나라 조정에서 여러 차례 정법(正法)을 설하였다.
그러나 손호의 성품이 흉포(凶暴)하고 조잡(粗雜)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현묘(玄妙)한 교리(敎理) 보다는 다만 인과응보(因果應報)만을 설하여 그의 마음이 열리도록 노력하였다.
승회는 건초사(建初寺)에서 많은 경전을 역출(出)하였다. 이른바 '아난염미경(阿難念彌經)' '경면왕경(鏡面王經)& &찰
미왕경(察微王經)& &범황경(梵皇經)'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소품경(小品經)''육도집경(六度集經) 잡비유경(雜警
喩經)' 등도 역출하였다. 그 어느 것이나 경의 진수(眞髓)를 교묘하게 파악하여 그 표현과 논지(論旨)가 곳에 따라 적절하였다.
또 '이원경(泥洹經)'의 범패(梵眞)를 전하였는데 청아하고 아름다운 위에 애달프면서도 밝아 당시의 모범이 되었다.
'安意'
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 &법경경(法鏡經)& &도수경(道樹經)' 등 세 가지 경전의 주석(注釋)을 새로 달고, 아울러 세 가
지 경의 서문(序文)을 새로 지었는데 표현이 정확하고 교묘(西妙)하며 논지(論旨)는 아주 세밀한 데까지 미쳐 그 어느 것이나 세상에 일려지지 않은 것이 없다.
오(吳)나라 천기(天紀) 4년(280) 4월에 손호는 전(帶)나라에 항복하였다.
그리고 그 해 9월에 승회는 병을 얻어 입적(入寂)하였다. 이 해는 진 나라 무제의 태강 원년이었다.
이 몸을 불태우더라도 내 혀는 타지 않는다.
구마라습전(鳩摩羅什傳)
구마라습(鳩摩羅什)을 여기서는 동수(重壽)라고 한다. 천축국(天竺國 : 현재의 인도) 사람으로, 그의 조상들은 대대로 국가
의 재상(宰相)을 지냈다.
구마라습의 조부 달다(達多)는 그 중에서도 재능이 유별나게 뛰어나 그의 명성이 온 나라에 퍼져 나라에서 소중히 여겼다.
부친 구마염(鳩摩炎)은 총명하고 마음이 아름다웠는데 장차재상 자리를 이을 단계에서 그것을 사양하고 출가하여, 동쪽으로 떠나 총령(慈嶺:파미르 고원)을 넘었다.
구자국(龜內國) 왕은 구마염이 재상이라는 영광스러운 자리를 버리고 나라를 떠났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매우 경모(敬慕)하여,
몸소 교외(郊外)까지 나가 맞이해서 국사(國師)가 돼 달라고 간청하였다.
구자국 왕에게는 누이동생이 있었다. 그의 나이는 겨우 스무 살을 갓 넘겼을 뿐이건만 특별히 두뇌가 명석해 일단 눈으로 본 것은 못하는 것이 없고, 한번 귀를 거친 것은 외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거기다가 몸에 붉은 점이 있어 지혜가 뛰어난 아이를 낳을것이라고 했다.
여러 나라에서 많은 청혼(請婚)이 들어왔건만 결코 시집가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구마염을 한 번 보고 나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 라는 생각이 불길처럼 솟아올라 기어이 그의아내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구마라습을 잉태하였다. 구마라습이 뱃속에 들어있을 때 그의 어머니는 이상하게도 지혜가 더욱 맑아져 보통 때의 갑절이나 되는 두뇌활동을 느꼈다.
아라한(阿羅漢)인 달마구사(達沙)라는 사람이 있어
"이것은 지혜가 뛰어난 아이를 임신했다는 징조다." 라고 하면서 사리불(舍利佛)이 태중(胎中)에 있을 때의 증험(證
驗)을 들려 주었다. 그러나 구마라습을 낳은 뒤에는 예전의 이야기들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았다.
얼마 있다가 구마라습의 어머니는 출가(出家)를 마음먹게 되었는데 남편 구마염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다시 아들 하나를 낳았는데 이름을 불사제바(弗沙提)라고 지었다.
그런 뒤 도성(都城) 밖에 갈 일이 있어 나갔다가 근처를 구경하며 돌았는데 어느 무덤과 무덤 사이에서 해골이 흩어져 이리저리 뒹구는 것을 보았다.
이에 인생이란 괴로운 것이라는 근본적인 생각에 미쳐
"나는 출가할 것이다. 만약 삭발(削髮)할 수 없다면 식사도 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맹세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맹세하고 음식을 먹지 않으면서 엿새가 되는 날 밤이 되었다. 그의 기력은 완전히 기진맥진해져 날이 밝을 때까지도 목숨을 지탱하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이러한 지경에 이르자 남편은 두려운 생각이 들어 삭발을 해도 좋다고 허락하였다. 그러나 그는 완전히 삭발하기 전까지는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고집했다. 하는 수 없이 사람을 시켜 머리를 깎아 주었더니 그제서야 비로소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다음 날 새벽에 수계(受戒)하고 난 후, 선정(禪定)에 흥미를 가지고 일심전력(一心專力) 수도를 게을리 하지 않아 초과(初果)를 습득하였다. 이 때 구마라습은 일곱 살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출가하여 스승에게서 경(經)을 배우고 매일 천 게(千偈)를 외웠다. 한 게(偈)가 32자이므로 전부 3만2천 자이다. 비담(毘)을 완전히 독송하자 스승은 그 뜻을 전수(傳授)하였다. 구마라습은 곧 그것을 깨닫고는 어떤 뜻깊은 대문이라도 설(說)하여 밝히지 못하는 부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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