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광은 또 구마라습을 소에 태우기도 하고 발광하는 말에 태워 떨어지게 하기도 하였다.
구마라습은 언제나 인욕심(忍辱)으로 그것을 참고 조금도 안색을 바꾸지 않았으므로, 여광은 스스로 부끄러워 그를 업신여기는 짓을 하지 않았다.
큰법이 동방으로 전해진 것은 한(漢)나라 명제(明帝) 때의 일로 그로부터 위(魏)나라, 진(晉)나라 시대를 지나면서 경전이나논서(論書)가 점차로 많아졌다. 그러나 지참(支) · 지겸(支謙)·축법호(竺法護) 등이 번역하여 출간(譯出)한 것들을 보면
충분히 소화시키지 못하고 서로 비슷한 어휘(語彙)로 바꿔 놓은데 불과한 것이 많았다.
군주(君主) 요흥(姚興)은 일찍부터 불법승(佛法僧)의 삼보(三寶)를 깊이 연구하여 강의 등의 집회에 한층 열의를 보였다.
구마라습이 온 뒤에 자리가 잡히고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지 정해지자 곧바로 서명각(西明閣)이나 소요원(逍遙園)에서 여러 경전을 번역해 달라고 의뢰했다.
구마라습은 많은 경문(經文)을 거의 암송(暗) 하고 있었을뿐 아니라 경문의 뜻도 연구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점차 중국서
(글에도 통달하게 되어 음의 번역(音譯)이나 뜻의 번역(意譯)등 어느 면에서도 막히는 데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옛날에 번역한 구역(舊譯)의 경전들을 한번 훑어보니 경문의 뜻이 핵심에서 벗어난 것이 많았다.
예전의 모든 번역이 근본 취지를 놓치고 있는 이유는 범본(梵本)과 대응(對應)하지 않은 데에서 생긴 것들이었다. 그래서 사문(沙門) 승략(僧碧)·승천(僧遷)·법흠(法欽)·도류(道流), 도항(道恒)·도표(道標)·승예(僧敎)·승조(僧筆) 등 8백 여 명
에게 구마라습의 뜻을 따르게 하였다.
다시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을 번역하게 하였는데, 구마라습은 범본(梵本)을 가지고 요흥(姚興)은 옛날에 번역한 구역
(舊)의 경(經)을 가져다 서로 대조해 보았다. 새로 번역한 본의 표현으로 옛날에 번역한 본과 바뀌어진 곳의 뜻이 완전히 소통되었다. 모두 감복하여 칭찬해 마지 않았다. 요홍은 불도는 막연한 듯하면서도 깊은 뜻을 지녔으며 그 실천
하는 행(行)은 오직 믿는 것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방법이며 세상을 구제하는 대강령(大綱領)이라고 생각하였다.
여기서 구경(九經)에 뜻을 쏟고 십이부(十二部)에 마음을 붙여'통삼세론(通三世論)'을 지어 사람들에게 인과(因果)의 도리
를 실천하도록 권장하였다.
왕공(王公) 이하 모두가 그 가르침을 기뻐하였다. 대장군 상산공(大將軍常山公) 요현(挑顯)과 좌군장군안성후(左軍將軍
城侯) 요숭() 등은 함께 마음으로부터 인연업보(因緣業報)를 믿어, 때때로 구마라습을 장안대사(長安大寺)로 초빙하여 새
로 번역한 경전을 강설(講說)하게 하였다.
계속해서 소품반야경(小品般若經)& &금강반야경(金剛般若經) 십주경(十住經)& &법화경(法華經)& &유마힐경(維摩結經)
사익경(思益經)' '수릉엄경(首楞嚴經)& &지세경(持世經)' '불장경(佛藏經)' '보살장경(書産藏經)& &유교경(遺敎經)' '보리
경(菩提經)& &제법무행경(諸法無行經)& &보살가색욕(菩薩可色欲)' '자재왕경(自在王經)' '십이인연관경(十二因緣觀經)& &무량수경(無量壽經)& 신현겁경(賢劫經)& &선경(經)' '선법요(禪法要)& &선법요해(禪法要解)' '미륵성불경(彌勒成佛經)'
미륵하생경 (彌勒下生經)& 십송률(十誦律)& 십송비구계본(十誦比丘戒本)' '보살계본(菩薩成本)' '대지도론(大智度論)
'성실론(成實論)& 십주론(十住論)' '중론(中論)& 백론(百論) '십이문론(十二門論)' 등 3백여 권 정도를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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